나는, 어떤 감각의 사람일까?
살아 있다고 느낀 순간이, 올해는 몇 번이나 있었나요?
하남에서 살아가는 3040에게 보내는 초대예요. 10월의 세 번의 토요일, 나를 찾으러 떠나는 작은 탐험이에요. 세 번 다 같은 걸음으로 걸어요 — 먼저 나의 것을 찾고, 그다음 우리의 것으로 합칩니다. 나의 감각에서 우리의 감각으로, 나의 색에서 우리의 색으로. 귀가 밝은 사람, 냄새로 기억하는 사람, 색에 멈추는 사람 — 나는 어느 쪽인지, 놀면서 알아가는 시간이에요.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, 느끼고 싶은 사람을 기다려요.
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「까불고」예요. 까불다가 문득 나를 까 보고, 서로를 불러 꺼진 감각에 불을 켜고, 그리고 — 계속 가는 일. 이번이 그 첫 번째 기수입니다.
“귀가 밝은 사람? 냄새로 기억하는 사람?
색에 멈추는 사람?”
문 앞에서 이름을 불러 맞이해요. 접수대도 명단 확인도 없어요. 따뜻한 차 한 잔과 웨이커 패스를 손에 쥐여드리고, 테이블엔 이름 카드가 먼저 앉아 있지요. 그리고 불을 끄고 83초짜리 짧은 필름을 봅니다. 소리는 없고, 한 문장만 남아요 — “없어진 게 아니라, 내려가 있는 겁니다.”
이제 탐사예요. 4분 33초 동안 방 안의 소리를 세는 것으로 시작해 촉감·온도·향·맛을 지나고, 지도에 없는 땅 미지의 구역으로 들어가요. 눈 감고 코끝 찾기, 손목 짚지 않고 심장 세어보기 — 오늘 하루에만 열두 개를 켭니다. 그마저도 전부는 아니에요. 세는 방식에 따라 스무 개, 서른 개로도 세거든요.
그리고 안대를 쓰고, 음악에 손을 맡겨 그려요. 안대를 벗는 순간이 오늘의 절정. 마음이 가는 한 장에 붙인 제목이 곧 내 감각의 이름이 되어(“냄새로 기억하는 사람”) 유리병에 봉인됩니다.
마지막에 열 개의 병을 한 선반에 나란히 세워요. 한 사람씩 자기 라벨을 소리 내어 읽고요. 혼자 열두 개를 켰는데, 우리는 백스무 개를 켰습니다.
나, 이런 감각을 가진 사람이었구나
색으로 떠나는 두 번째 탐험. 이번엔 밖으로 나가요. 스물네 가지 색 앞에서 끌리는 색 셋을 고르고, 질문을 지날 때마다 하나씩 내려놓아요. 정답을 고르는 시간이 아니라 좁혀가는 시간이지요.
남은 색을 면·니트·오간자 같은 다섯 소재로 하늘에 비춰봅니다. 같은 색인데 소재마다 다른 색이 돼요. 빛은 해가 맡고요. 그렇게 한 색과 한 소재에 도착하면 같은 조각을 두 장 받아요 — 하나는 나에게, 하나는 우리에게.
‘나에게’ 조각은 카드에 붙여 내가 지은 이름을 적어요. 팬톤 이름이 아니라 내 말로요. ‘우리에게’ 조각은 커다란 직조 프레임에 한 사람씩 나와 ‘탕’ 하고 박습니다. 박으면서 자기 색의 이름을 소리 내어 말해요. 그 소리가 선언의 마침표가 되지요.
전원이 박고 나면 해 반대편으로 돌아가 역광으로 봅니다. 겹친 자리엔 제3의 색이 생기고, 바람이 불 때마다 색이 계속 바뀌어요. 마지막으로 다 함께 오늘 만들어진 ‘우리의 색’에 이름 하나를 짓습니다.
나는 하나의 색이지만, 우리가 만나면 새로운 색이 된다
두 번의 탐험에서 찾은 것들을 한자리에 펼쳐요. 그런데 바로 쓰지 않고 먼저 아껴줍니다. 그동안 홀대받아 온 내 감각과, 내가 만든 것들을 하나씩 소중하게 여겨주는 시간부터요.
그다음 그 감각에 은유로 이름을 붙여요. ‘빨간색을 좋아하는 사람’이 아니라, 그 사람만의 말로요. 이름도 직업도 역할도 아닌 이름으로 서로에게 나를 소개하는, 감각을 나누는 시간이에요.
감각으로 나를 소개한다면, 나는 어떤 이름일까
세 번의 탐험에서 나온 것들 — 열 개의 병이 선 선반, 열 개의 색이 박힌 직조 프레임, 각자가 지은 은유의 이름 — 이 인스타그램에 시리즈로 아카이빙됩니다. 하루 열리고 닫히는 전시보다 오래 열려 있고, 더 멀리 닿으니까요.
우리는 어떤 감각을 지나왔을까
준비물은 없어요. 잘 그리거나 잘 만들 필요도 없고요. 탐험에는 정답이 없으니까요. 못 찾아도 실패가 아니라, 아직 안 가본 구역일 뿐이에요. 한 줄이면 충분해요 — 어제 점심, 무슨 맛이었어요?
참여 신청하기 ↗신청 마감 10월 8일 (목) · 3분이면 끝나요 · 선정 결과는 10월 11일 개별 연락 · 문의 yesgamso@gmail.com